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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무늬와 은석은 한국인이다. 무늬의 부모는 남한에서 태어났고, 은석의 부모는 북한에서 태어났다.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지만, 출발선은 달랐다. 이 차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면이 없는 무늬와 은석은 같은 에어프랑스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향했다. 은석은 곧바로 파리로, 무늬는 언어가 다른 분단의 구조가 닮아 있는 벨기에 국경 인근의 릴(Lille)에 도착했다. 남성 중심의 영화 대신, 여성적인 감수성의 사진 작업을 선택했다. 이후 우리는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다. 학업을 마친 뒤, 무늬가 태어난 9월에 같은 비행기에 있었던 은석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9·11 테러 이후 1년을 지켜본 뒤, 정치·경제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미국의 영향권에 놓인 반도의 현실로 복귀한 것이다. IMF를 직접 겪지 않은 세대였기에, 돌아온 자리를 반기는 손은 많지 않았다.

보편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는 순환하며 반복되어 왔지만, 악순환 또한 멈추지 않았다.AI, META, IT, DIGITAL, GLOBAL 같은 유행어들은 끊임없이 소비되지만, 그 이면에는 공감 없는 담론과 탁상공론이 남긴 심리적 피로가 쌓여 있다. 생각의 자유가 줄어들수록 상상력의 채도 또한 옅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 간다. Kurt Vonnegut의 말처럼, “Keep going.”Nice Nice Very Nice.

부그 발전소의 시각 작업은 문화·사회·정치·경제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모순, 편견, 무지를 작은 장면으로 확대해 보여주려는 시도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궁금해하지 않지만 정직하게 치유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매일 촬영하고, 매일 작업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화음과 불협화음처럼, 색에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 인물의 반응과 역할을 연극적으로 재해석하고, 부조리극의 형식으로 연구했다. 영화와 연극의 이론을 참고하여, 인식과 경험을 존중하되 행동, 동작, 제스처, 표정에 숨어 있는 계산된 장치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종교·정치·자본의 이름으로 위선을 연기하는 인물들, 기름지고 거만한 형상들, 불안과 냉소 속에서 웃고 있지만 얼굴에는 주름이 깊이 새겨진 인간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같은 한국인의 시선에서 말이다.

발전소는 비관과 퇴폐, 그리고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하려는 태도를 비판한다. 모순·편견·무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순환하는 고리로 엮으며, 쉽게 벌고 쉽게 쓰는 구조와 어렵게 벌어 어렵게 쓰는 삶의 대비를 드러낸다. 고민의 흔적과 따뜻한 성찰이 사라진 비인간적인 풍경을 기록하고자 한다.

발전소는 모순·편견·무지를 부정의 언어로 비판하지만, 그 끝에서는 긍정의 무늬(紋)를 찾고자 한다. 글월문(文)과 무늬문(紋)의 교차점에서 희망을 말하려는 이유다. 치유 없이는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역사와 그 왜곡에 대해, 공감 가능한 보편적 기준을 다시 세우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가장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믿는다.

발전소의 작업은 글(text·theory)과 무늬(pattern·image·practice)로 이루어져 있다. 말과 이론 이전에, 인간은 이미 그림과 무늬로 세계를 이해해 왔다. 희망과 불안, 긍정과 부정, 정답과 오답은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색, 인물의 동작, 화면의 구성과 움직임은 그 공존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