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유럽(E.U.)의 중심이고 코로나방역의 중심 우리는 아시아대륙이다. 2020년 유럽과 우리를 보면서 다시 시사성을 부여한다. 1919년 3.1운동 100주년과 바우하우스 탄생. 서구에 대한 환상과 결핍으로 인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닌 기쁨, 그러나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는 밥그릇의 문제, 처절한 학연-지연, 천박한 기독교, 잔존하는 친일파 등 우리의 이슈와 프랑스의 여전히 남아 있는 제국주의와 Françafrique의 흔적들. 파리의 리얼함을 빗대어 우리의 사회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종이(CMYK)와 스크린(RGB)에서 작업의 변화. 연극의 텍스트에서 영화의 시각적 작업으로 전향 그러나 자본의 힘과 그룹 작업의 고통 다시 말하면 술권하는 사회와 단절하기 위해 차선으로 다른 프레임을 선택하며 자원의 고갈로 인해 변해가는 산업구조의 영역속에서 멀티미디어로 움직이려고 하는 사진으로 취향선택을 한다. 즉 영화. 기술적 변화는 아이디어 전개 방법의 부분적 확충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폐쇄적 사고방식은 필요없다고 느껴지는 공유적 사생활을 통해 정보의 선택의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개발자와 자본가의 함수 공식을 과대포장한 A.I와 4차산업 혁명으로 인해 인간성과 순수의 시대와 점점 결별하고 있는중에 시각적 본질을 찾고자 노력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낯설게 하기'의 정치 사회적개념에서 출발해서, 레이몽드 드파르동(Raymond Depardon)의 사진과 영화의 장르의 융합, 윌리엄 이글스톤(William Eggleston)의 일상의 민주주의 경유지를 거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러시아 우주론까지 안착하면서 예술의 불멸에 대해 생각해본다.